2016년도부터 우리나라 모든 중학교에서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자유 학기제, 실제로 우리나라 교육 정책을 담당하는 교육 전문가들이 참고했다는 아일랜드, 덴마크, 영국의 자유 학기제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중 우리보다 40년 먼저 ‘전환 학년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지금껏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이야기부터 만나보도록 하자.

1 고풍스러운 TCD 대학 전경. 아일랜드 최고의 대학이자 관광 명소의 하나로 늘 방문객들로 붐빈다.
2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메리온 스퀘어에 있는 오스카 와일드 동상.
3 아름다운 자연을 가지고 있는 아일랜드는 지리적, 역사적 환경이 우리나라와 많이 비슷하다.
4 제임스 조이스 동상. 아일랜드는 제임스 조임스를 비롯한 윌리엄 예이츠, 사무엘 베케트 등 세계적 문인들의 고향이다.

역사,사회,교육 환경이 우리나라와 꼭 닮은 아일랜드
영국 런던을 경유하여 비행기를 갈아타고 한 시간 남짓 다시 바다를 건너면 아름다운 초록의 섬 아일랜드에 닿는다. 우리나라 자유 학기제의 모델인 ‘전환 학년제(Transition Year)’와 직업 체험의 현장을 보기 위해 이 나라를 찾았다.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내가 방문할 나라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아일랜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도서관과 서점에 가서 아일랜드 관련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턱없이 자료가 부족하고 변변한 여행 가이드 북조차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서유럽 끝자락에 있는 나라, 아일랜드. 혹시 문학에 관심이 많다면 월리엄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케트, 그리고『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그곳에 가서 알았다. 그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것을.)등의 문인들, 만약 술을 좋아한다면 기네스 맥주, 아이리시 커피 정도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아닌가 싶다.

유럽 북서쪽 끝에 위치한 아일랜드는 지리적으로 영국과 인접해 있어 12세기 영국 헨리 2세의 침략 이래로 1937년 정식 독립할 때까지 약 8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고, 독립을 위해 치열히 싸웠던 슬픈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0년대 전까지 유럽에서 이렇다 할 경제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나라였던 아일랜드는,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성공적인 다국적 기업 투자 유치와 기업 투자활성화 정책 등으로 ‘켈트의 타이거(Celtic Tiger)’ ‘리피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룬다. 당시 아일랜드의 발전상을 보도한 영국의 경제전문지『이코노미스트』는 아일랜드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아일랜드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여기며 폄하했던 영국이 스스로 아일랜드의 발전을 높이 평가하는 상황이 펼쳐졌는데, 아일랜드는 이러한 고속 성장을 자축하고자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과 같은 오코넬 거리 중심에 120미터 높이의 ‘스파이어(The Spire) 첨탑’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8년 국제 금융 위기로 인해 2011년 IMF의 구제 금융을 받는 등 채무 위기를 겪었고, 2013년 구제 금융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조기 졸업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아일랜드는 지리적 환경 및 역사적 경험이 우리나라와 닮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아일랜드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영어로 말하는 것 빼고는 꼭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다. 그들은 정도 많고 따뜻하며, 또한 자신들을 침략했던 나라에 대한 반감도 대단하다. 가족 간의 유대감이 돈독하여 자식에 대한 기대와 교육열이 유럽의 여느 나라와는 달리 매우 높으며, 대학 진학률도 높고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아일랜드에서 대학 입학은 오로지 시험 점수에 의해서만 그 합격이 결정된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은 대학 입학을 위한 고교졸업 시험 점수를 1점이라도 더 올리려고 공부에 매진하는데 아일랜드 내에서도 이런 입학 방식의 교육적인 효과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이에 아일랜드 교육 관계자들은 이 같은 팍팍한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였고, 그 결과 찾은 방법이 바로 ‘전환 학년제(Transition Year)’였다. 경쟁적인 교육 환경에서 미래를 이끌어 나갈 학생들에게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심도 있게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게 해주고자 1974년 ‘전환 학년제’를 도입하여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다. 전환 학년제는 우리나라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주니어 사이클(Junior Cycle)과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시니어 사이클(Senior Cycle) 사이에 1년간 실시하는 교육 과정이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잠시 시험 점수의 부담에서 벗어나 학교 수업과 외부 체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찾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갖는다.

아일랜드의 교육 제도
아일랜드의 교육 제도는 초등, 중등, 고등 교육의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초등 교육 과정(6~11세)은 우리나라 초등학교에 해당하며, 중등 교육 과정(12~17세)은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 해당한다. 학년은 주니어 사이클 3년(중학교), 전환 학년(Transition Year) 1년, 시니어 사이클 2년(고등학교)으로 나뉜다. 전환 학년은 주니어 사이클과 시니어 사이클 사이에 해당하는 1년의 선택 과정으로,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학교 수업과

체험 활동을 하며 진로와 적성을 찾는 기회를 갖는다. 아일랜드에서 대학 입학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오로지 고교 졸업 시험 점수에 의해서만 그 합격이 결정된다. 입학 관리는 국가의 중앙 입학지원센터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곳에서 모든 학생의 졸업 시험 점수를 종합하여 지원 학교 및 학과에 학생들을 점수 순으로 배치한다. 아일랜드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65% 정도인데 유럽 국가들의 진학률이 30~40%인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유럽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일랜드에는 유명 사교육 기관이 존재하는데, 이를 ‘Grind School’이라 부른다. 이곳은 고교 졸업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한 입시 전문 학원이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위치한 ‘Institute of Education’이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 주로 상위권 대학 인기 학과를 목표로 하는 일부 상위권 학생들이 시험 점수를 올리기 위해 이곳에서 수강한다.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회 문제가 될 만큼 많은 학생들이 다니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중심이 되는 수업, ‘나’를 발견하는 시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시내에서 루아스(Luhas)라는 전차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발라리(Balary)라는 지역이 나온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 판교와 같은 신도시인데, 이 지역에 위치한 웨슬리 칼리지(중등학교)에서 전환 학년 수업을 직접 참관할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교실에서는 ‘Music Technology’ 수업이 한창이었다. 컴퓨터, 신시사이저 등 각종 전자 악기가 비치된 교실에서 학생들은 교사와 함께 비디오를 보면서 효과음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배우고 있었다.

수업을 하고 있는 젊은 교사는 현재 아일랜드 내셔널 오케스트라가 그의 곡을 연주할 정도로 유명한 현대 음악 작곡가인데 학생들에게 실제 작곡하는 방법 및 관련 분야의 진로 등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준다고 했다. 평소 영상과 음악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관련 진로에 대해 알기 위해 이 수업을 선택한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미니 컴퍼니(Mini Company)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니 컴퍼니란 학생들이 모의 회사를 세운 뒤 다양한 제품을 함께 만들어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체험하는 수업이다.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회사의 기본 개념을 익히고, 모의 회사의 주식을 발행하여 주주를 모집하고, 회사 각 부서의 업무 활동, 예를 들어 시장 조사, 생산, 판매, 인사 등을 경험한다. 학생들은 조별로 모여 진지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방문객이 들어가도 잘 모를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전체 학생이 3개의 조로 나뉘어 1조는 컵케이크 제작과 판매, 2조는 학교 로고를 새긴 스포츠 백 판매, 3조는 화이트보드를 판매한다고 했다. 이 학교에서 오랜 기간 동안 전환 학년 연구 교사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 Shaw를 통해 이 수업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떠한 활동을 하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Q : 아일랜드에서 진행하는 전환 학년제란 무엇인가요
전환 학년제는 아일랜드의 15~16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니어 사이클(중학교)과 시니어 사이클(고교) 사이에 해당하는 1년의 선택 과정입니다. 학교 안과 밖에서 학생이 주도하는 교과 공부와 체험에 의한 학습이 1년 동안 이루어집니다.

Q : 아일랜드 학생들은 전환 학년 기간 동안 어떤 경험을 하나요
전환 학년 기간 동안 학생들은 다양한 교수법을 통한 필수 교과 공부와 체험 활동들을 경험하는데 예를 들어 프로젝트 수업, 직업 체험 활동, 창의적 글쓰기, 모의 창업, 영화 창작, 스포츠 활동, 과학 및 패션 경연대회 등의 교내외 활동을 하면서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을 하고 진로 및 진학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습니다.

Q : 언제부터 전환 학년제를 실시했나요
아일랜드의 경우 1974년에 이 제도가 시작되었는데, 학생들이 시험 위주의 공부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앞으로의 직업,인생에 대해 배우고 생각해볼 시간을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Q :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예. 여기에서는 대부분 전환 학년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학생들이 여러 가지 체험 없이 시험 준비를 위한 수업만으로는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 수 없고, 또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없습니다. 아일랜드에서도 이 제도에 대한 찬반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없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학 입학 시험 준비를 위해 모든 수업이 너무 빠르게 진행됩니다. 이런 기회가 없으면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 보고 듣고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지요.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점수를 얻어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는데 성적 외의 중요한 다른 능력들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의사소통 능력, 자기 주도 학습 능력 , 창의력, 협동심 등이 그것이지요.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수동적으로 듣는 것보다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해보는 경험은 이런 역량들을 키우는 데 꼭 필요다고 생각합니다.

Q : 이 기간 동안 시험을 보지 않고 체험 위주의 활동으로 인해 자칫 학생들의 학업능력을 저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어떠한가요
우리는 오랜 기간 경험을 통해 전환 학년제가 학업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 교육 기관의 연구 조사 결과도 있는데, 전환 학년제를 경험한 15~16세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더 학업 능력이 우수하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환 학년제를 경험한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자신들이 무엇을 전공하는지에 대해 더 잘 알고 선택한 학과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저는 그 연구 결과가 정확하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실제로 학교에서 오랜 기간 동안 전환 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경험한 결과와 일치해요. 전환 학년 기간 동안 아이들은 의사소통 능력, 협동심, 리더십 등을 집중적으로 경험해봄으로써 보다 성숙해집니다. 교사와의 의사소통 능력이 높아지고 수업에 대한 관심과 집중도가 높아지면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Q : 전환 학년제가 성적 향상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나요
예, 그렇습니다. 이 기간 동안 교과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기간에 이루어지는 공부양은 실제로 무척 많습니다. 이 기간은 연사 강의를 수동적으로 듣고, 단순히 외부 활동을 하고, 적은 양의 수업을 듣는 기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도전하는 기간이지요. 이 기간 동안 새로운 주제를 탐구할 수 있고, 부담 없이 여러 가지를 체험하고 도전해볼 수 있습니다. 연구 과제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은 온전히 학생들의 몫인데, 그전에는 이러한 수업 계획과 실행 준비, 과제 등을 학교에서 수동적으로 전달받지만 전환 학년 기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1년의 시간을 스스로 운영하고 다가올 시니어 사이클(고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울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Q : 전환 학년 기간 동안 어떻게 학생들을 평가하는지요
평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합니다. 왜냐하면 전환 학년에서의 평가는 다른 기간의 성적 평가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선 학생이 먼저 자신을 평가하도록 하는데 이는 학생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학생이 스스로 어떤 도전을 했는지, 무엇을 성취했는지에 대해 평가하도록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한 해를 설계하고 성공적으로 진행했는지 자신을 평가함으로써 앞으로의 계획과 진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교사들에 대한 평가, 해당 과목들의 평가 및 피드백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직업 체험을 하고 난 후에는 고용주가 해주는 평가도 있습니다. 평가항목을 보면 새로운 것을 얼마나 많이 시도해보았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잘 협동했는지, 얼마나 잘 소통하고 교류했는지, 사회적 적응력이 높아졌는지, 독립적으로 수행했는지 등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가 이루어집니다.